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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서운 돈맥경화경제 2020. 3. 23. 08:47
요즘 우리 인류가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전쟁터는 두 곳입니다. 하나는 병원, 또 한 곳은 금융시장입니다. 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저희의 영역이 아니니 잘되고 있기만을 기대하면서 접어두고, 금융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설명드리겠습니다.
금융시장에서 요즘 가장 눈에 띄는 건 ‘신용경색’ 입니다. 쉽게 말하면 돈을 빌려주지 않고, 빌려주던 돈도 회수하려고 하는 겁니다. 이유는 이 상황에서 어떤 기업이 쓰러질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돈을 빌려줄 때 했던 이 정도면 충분히 갚을 만하겠다는 판단이 모두 무너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인가요?
지난달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던 기업이 이번달에 갑자기 불안해지는 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영업활동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지만 그 이유 때문에 생기는 문제보다는 ‘그럴 것이라고 판단하고 미리 돈을 회수하려는 움직임’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훨씬 큽니다. 발생하지 않은 일에 대한 공포를 금융시장은 빠른 속도로 반영하는 중입니다.
그런 지표 가운데 가장 많이 쓰이는 게 <CP-OIS 스프레드>라는 겁니다. 평소에는 채권시장에서 일하는 전문가들 말고는 들어볼 일조차 없는 용어지만 요즘은 이걸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두려워하는 중입니다. OIS 금리(overnight index swap rate)는 금융회사들 사이에서 하루동안 돈을 빌리면서 주고 받는 연환산 이자율이고 CP는 기업들이 90일 동안 돈을 빌리면서 내는 연환산 이자율입니다.
올해 초만 해도 두 이자율 차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만큼 금융시장에 서로를 믿는 분위기가 넘쳐 흘렀다는 의미입니다. 이 금리가 최근에는 1%포인트까지 치솟았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나 있었던 현상입니다. (그 당시에는 1.8%포인트 정도까지 올랐었습니다.)
저희가 ‘기업들’이라고 표현했지만 미국의 기업어음 시장에서 거래를 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금융기업들입니다. 비금융권은 25% 정도이고 신용위험이 거의 없는 대기업들입니다. 그러니 무담보로 90일씩 돈을 빌려주면서 은행간 이자율만 받았던 겁니다. 이 시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 금융회사들끼리도 못믿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미국 연준이 기업어음을 사들인다는 뉴스는 금융회사들 사이에 마비되고 있는 자금 흐름을 개선하겠다는 뜻입니다.
미국 중앙은행이 회사채를 사들이라는 요구는 왜 나오나요?
우리나라는 기업어음과 회사채가 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회사채가 만기도 더 길고 안정적인 채권으로 인식되지만 미국은 말씀드린 대로 기업어음을 발행하는 곳이 대부분 금융회사들입니다. 그래서 기업어음이 더 신용도가 좋은 상품입니다.
회사채는 말 그대로 회사들이 발행한 채권인데요. 평소에는 신용위험이 좀 있는 회사들의 회사채도 별 일 없으리라는 예상으로(별일 없이 지나가기만 하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으므로) 시장에서 소화되었지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금융시장에 신용경색이 번지면서 이 시장도 마비되는 중입니다. 미국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서 그 시장에서 회사채를 사들이라는 요구가 시장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 사들이면 되지 뭐가 걱정인가요?
그렇게하면 어느 정도 위기가 가라앉긴 하겠지만 중앙은행들이 걱정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걸핏하면 지원하는 관행이 자리잡을 경우 시장에서는 위험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과 높은 기업의 이자율 차이가 거의 없어지고 위험한 기업들이 시장에서 평가 받고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는 선순환이 붕괴합니다.
위기 상황에서는 그런 한가한 고민이 사치라는 지적이 많지만 신용도가 낮은 건 위기 상황에서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위기 상황에 늘 중앙은행이 개입하면 어떤 회사도 망하기 어렵고 그 말은 어떤 회사도 새로 생기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 고민은 연준이 모든 회사채를 다 사줄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중앙은행이 일부 우량한 회사채를 사들이면서 그 회사채들의 가격을 올리면(금리를 떨어뜨리면) 그 다음으로 우량한(약간 불량한) 회사채들은 시장의 일반적인 자금이 상대적으로 비싼 이자율을 노리고 들어가는 선순환을 기대하는 것인데 그게 잘 작동할지 미지수입니다. 지금은 어떤 기업이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상황인데 연간 이자율 몇 %를 받으려고 그 위험을 감당할 시기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즉 연준의 개입도 시장의 패닉 심리가 사라져야 효과를 발휘하는 것인데 패닉 심리가 사라지면 연준의 개입은 사실상 불필요한 것이어서 연준의 개입은 치료제가 아니라 회복 가속제 정도로만 기능한다 는 게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상황이 어떤가요?
지금 말씀드린 건 미국의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원인과 나타나는 현상은 미국과 매우 유사하며 시장이 요구하는 해결책도 정부나 한국은행이 금리가 올라가고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는 기업어음을 사들이라는 겁니다.
정부는 한국은행이나 정부자금 대신 은행들이 돈을 내서 펀드를 만들고 이 펀드가 시장에서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이른바 증시 및 채권안정펀드입니다. 실제로 5대 은행들(정확히는 금융지주회사)이 2조원씩 돈을 내서 펀드를 만들 예정입니다.
이 방법은 생각해보면 꽤 재미있는 구조입니다. 채권안정펀드에 돈을 내서 채권을 사들일 바에는 은행들이 각자 채권을 사들이면 되지만 각자에게 맡겨두면 위험 때문에 오히려 채권을 팔면 팔았지 사들이지는 않습니다. 사들일까 싶다가도 남들이 사들이지 않으면 나도 사지 않는 현상이 반복됩니다. 결국 10조원의 채권안정펀드는 일종의 담합입니다. 돈을 내서 위험도 함께 지고 수익이 생기면 함께 나누기 위한 것인데 이런 인위적인 장치가 필요한 이유는 최근의 위기 상황이 아직은 심리적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위험한 기업은 없으나 곧 위험해질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미리 반응하는 것인데 채권 안정펀드는 그걸 2조원어치만큼은 좀 자제하자는 제안 입니다.이진우의 익스플레인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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